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카지마 킷카 (문단 편집) == 시험비행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ikka_Orange_Blossom_Kikka-10.jpg|width=100%]]}}}|| || 이륙 준비중인 킷카 || 45년 8월 7일, 킷카는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12분간의 첫 비행에 성공한다. 이때는 첫 비행인 만큼 이륙중량을 줄이기 위해 노즈기어 커버와 라디오, 라디오 안테나를 뗀 상태였고 연료 역시 만재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랜딩 기어]]는 내린 상태였다.[* 사실 이건 특별하지는 않은 것이, 대부분의 항공기들은 첫 비행에서 랜딩기어를 내리고 비행한다. 첫 비행한 만큼 돌발상황이 벌어져 비상착륙을 해야할 수도 있는데, 기체 오류로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아예 비행 내내 내리고 있는 것.] 첫 비행에 성공한 킷카의 다음 테스트는 연료를 만재한 상태에서의 비행시험 실시가 예정되었다. 연료를 가득 채운 킷카는 약 3.5톤으로 Ne-20 엔진의 추력으로는 이륙하기 다소 버거웠다. 따라서, 이륙시에는 보조로켓(RATO)을 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 비행테스트는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본래 예정일은 10일이었으나 공습으로 연기, 11일에는 악천후로 연기되었고, 결국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벌어진지 6일 후인 8월 12일 킷카의 두번째 비행시험이 실시되었다. 엔진 전 출력 가동과 RATO 보조로 이륙 활주를 시작했지만 RATO의 연소가 종료되어 가속도가 떨어지자 테스트 파일럿[* 다카오카 스스무 소좌. 패전 후에는 항공자위대에 입대하여 최초의 일본제 제트연습기 [[후지 T-1|T-1A]]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기도 했다.]은 이것을 엔진 트러블에 의한 출력저하로 판단, 이륙을 단념하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나 킷카는 제대로 멈춰서지 못하고 그대로 활주로를 이탈한 후 전복되며 기체가 파손된다. 일본은 어떻게든 킷카를 수리하여 다시 테스트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시간은 더 이상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3일 후인 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은 무조건 항복하고 제작된 두 대의 시제기는 미군에게 접수된다. 이 중 한 기는 현재 복원 중이며, 한 기는 엔진이 제거된 채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서 전시 중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 병기를 '특공병기'로 부른 것과 이름에 花자가 들어간 것, [[MXY-7 오카]]의 뒤를 이어 황국 2호 병기로 지정된 것을 보면 아마 이 놈도 자살병기로 사용하려 했던 것 같다는 의혹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는 '특수 공격기'로 취급한건데, 제트기로서 초고속으로 미국 함대에 500kg 폭탄을 떨구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일반기에 비해 특수하다고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